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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의 달, 김건희의 달 [유레카]

담빛 2025. 9. 4. 07:42
조혜정기자
  • 수정 2025-09-03 23:43
  • 등록 2025-09-03 16:54
    <기사 일부:: “호수 위에 비친 달그림자”, 남편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월4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5차 변론에서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강변하며 꺼낸 비유에 겹쳐진다. 얼핏, ‘어두운 밤’을 밝히는 달과 그에 사랑을 맹세한 순정의 로맨스 같기도 하다. 국민을, 세계를 경악에 빠트린 2024년 12월3일 밤 10시27분이 2022년 5월10일 시작된 소설 같은 현실의 절정이었다는 점을 빼면.>

니체적 사유:;

그림자와 허상
니체는 “진리”라 불리는 것이 사실상 오랫동안 기능해온 인간적 허구,

즉 유용한 허상일 뿐임을 폭로했다.

달 자체가 아니라,

호수에 비친 달그림자를 붙잡으려는 행위는 곧 허상(Abbild)을 실재로 오인하는

인간의 고질적 충동을 보여준다.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그림자’의 이미지로 방어하는 것은,

실체 없는 권력을 허상의 권위로 장식하는 시도일 뿐이다.

니체가 말하는 “우상파괴”의 과제는 바로 이런 권력의 허구적 정당화를 벗겨내는 데 있다.

 

비극적 절정으로서의 정치
기사가 지적한 “소설 같은 현실의 절정”은 니체적 관점에서,

허구와 실재가 구분되지 않는 ‘비극적 무대’로 해석된다.

삶은 그 자체로 무대이고,

정치 역시 허상과 연극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연극이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실제 인간들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데 있다.

달빛을 낭만으로 치장해도,

그 아래서 벌어지는 것은 고통과 억압이라는 현실적 사실이다.

니체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삶의 무대’임을 드러내려 했다.

 

권력의 미학화
니체는 근대 정치가 종종 진리나 정의가 아니라

‘미학적 장치’로 스스로를 유지한다고 보았다.

즉, 비상계엄이 ‘달빛’이라는 상징으로 장식될 때,

권력은 자신을 아름답게 연출하며 저항을 무디게 만든다.

그러나 이는 곧 니체가 비판한 ‘허무주의적 장식’에 불과하다.

삶의 힘을 증대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권력의 공포를 낭만화하는 허무한 기호일 뿐이다.

 

디오니소스적 해석
만약 이 장면을 디오니소스적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가장 높은 절정에서 드러나는 몰락의 징후”이다.

권력이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 허상을 붙잡는 순간,

이미 몰락의 씨앗은 싹튼다.

달그림자는 결코 달이 될 수 없고,

허상은 실재를 대체할 수 없다.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가

창조적 전환을 이끌지 못하고 단순히 허상을 반복하는 순간,

그것은 퇴락의 신호다.


👉 정리하면, ‘호수 위 달그림자’라는 비유는 니체적 관점에서 권력의 허상화,

비극적 무대, 그리고 몰락의 징후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진정한 힘은 허상의 장식이 아니라

삶을 긍정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데서 나오며,

허상에 매달린 권력은 결국 스스로 붕괴할 운명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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