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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관찰법

담빛 2025. 8. 25. 09:45

오피니언 여적 수정 2025.08.24 21:02

  • 이명희 논설위원
    ‘도시 관찰 이벤트’에 참여한 망이(SNS 활동명)가 엑스에 올린 사진. 이 사진엔 “사랑은 마침표를 반드시 붙여서 내놓으세요”란 글이 적혀 있다. ‘폐기물’과 ‘스티커’라는 단어가 지워진 재활용분리수거 안내문에 누군가 ‘사랑’과 ‘마침표’를 적어 놓았다. 망이 제공
    <기사일부::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놀이문화처럼 번지는 ‘도시 관찰’법이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망이(SNS 활동명)가 엑스에 올린 사진엔 “사랑은 마침표를 반드시 붙여서 내놓으세요”란 글이 적혀 있다. ‘폐기물’과 ‘스티커’라는 단어가 지워진 재활용분리수거 안내문에 누군가 ‘사랑’과 ‘마침표’를 적어놓은 것이다. 도시 관찰 열풍은 지난달 25일 책 <이다의 도시 관찰일기> 홍보 이벤트에서 시작됐다. “직접 발견한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도시 풍경들을 자랑해달라”는 출판사 게시글은 한 달 만에 3800만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중략> 청년들도 지나칠 법한 풍경들을 세심한 관찰 끝에 발굴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위로를 받을 터다. SNS에 산책자들의 기록이 쏟아지고, 이를 공유하는 것을 보면 도시 관찰은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도 확장되는 듯하다. >

도시라는 공간은 무수한 규칙과 지침으로 사람들을 묶어두는 장치다.

“재활용 분리수거”라는 안내문은 본래 기능적 질서의 일부이지만,

누군가 그 위에 “사랑은 마침표를 반드시 붙여서 내놓으세요”라는 문장을 덧붙였다.

 

익명의 낙서는 공공의 규율 속에 개인의 사유를 심는 행위이며,

도시의 표면에 작은 균열을 내는 시도다.

 

사랑과 마침표라는 단어가 재활용 규범을 대체한 순간,

안내문은 규칙을 넘어 삶의 은유로 변모한다.

마침표를 붙이지 않은 사랑은 끝없이 방황하거나 소멸을 부정하는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마침표를 붙인 사랑은 유한성을 인정하는 사랑,

끝을 수용하는 용기 속에서 더 온전해지는 사랑이다.

사랑도 폐기물처럼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되며,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되고,

내놓이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재탄생해야 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도시의 언어는 원래 효율과 질서에 맞추어져 있지만,

이 짧은 개입은 그 언어를 시로 전환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사랑을 어디에,

어떤 형식으로 내놓고 있는가.

 

관계의 언어는 늘 미완의 문장처럼 흘러가지만,

언젠가는 마침표를 찍을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은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끝맺음을 통해 새로운 관계가 가능해지는 문법이다.

 

사랑은 무한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마침표 없는 사랑은 환상이고,

마침표를 수용한 사랑은 현실이다.

 

도시의 한 켠,

폐기물 스티커 위의 작은 낙서는 우리에게 일상의 질서 속에서도 끝맺음의 철학을,

그리고 끝맺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의 순환을 사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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