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 오피니언 사설
‘과거사 동결’ 아쉬운 한·일 정상회담, 일본 후속조치 나서야
수정 2025.08.24 21:02
펼치기/접기
‘과거사 동결’이라는 말은 언뜻 합리적 타협처럼 들리지만,
실은 가장 위험한 방식의 봉인이 될 수 있다.
얼어붙은 과거는 잠시 동안은 움직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다시 녹아내려 흐르고,
그때는 더 큰 파열과 균열을 낳는다.
기억은 억압된 채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깊은 층위에서 살아남아,
언제든 현재를 흔드는 힘으로 돌아온다.
진정한 치유는 망각에 있지 않다.
망각을 강요하는 사회는 그 자체로 자기 부정에 빠진다.
오히려 고통스러운 과거를 똑바로 직시하는 용기,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감내하는 태도 속에서만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국가 간의 만남도
단순히 정치적 이해관계를 맞추는 행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서로의 상처를 함께 껴안고,
그 무게를 새로운 토대로 전환하는 실험이어야 한다.
역사적 상처를 동결한다는 것은 미래를 향한 에너지를 봉쇄하는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과거의 고통을 온전히 기억할 때에만 우리는 미래를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다.
그 고통은 무거우나,
바로 그 무게가 관계를 더 깊게 하고,
기억의 공유가 서로를 진정한 파트너로 묶어낸다.
따라서 필요한 후속 조치는 ‘얼마나 잘 잊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이다.
기억을 의무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공동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책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과거는 우리를 붙잡는 쇠사슬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으로 향하는 발판이 된다.
역사를 얼려둔 채 미소를 주고받는 외교는 공허하다.
얼음을 녹이고, 그 속에 잠든 목소리와 고통을 함께 들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화해의 길이며, 공동체를 성숙하게 만드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