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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봐야 할 ‘산재와의 전쟁’ [뉴스룸에서]

담빛 2025. 8. 21. 11:54
김소연기자
  • 수정 2025-08-20 19:41
  • 등록 2025-08-20 17:52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2023년 12월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눈물을 닦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기사 일부

김소연 | 사회정책부장

 다시 ‘김용균’을 돌아본다. 2018년 12월11일 새벽 3시23분, 홀로 밤샘 노동을 하던 24살의 청년 노동자가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계약직 노동자였던 김용균이다. 한국전력공사 입사를 꿈꾸며 경력을 쌓기 위해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지 3개월로 접어든 때 일어난 참변이다.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은 장례를 미룬 채, 긴 싸움을 시작했다. 왜 아들이 홀로 처참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는지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또 다른 김용균’에게 반복되는 것을 막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미숙은 아들의 죽음 뒤에 ‘위험의 외주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마주하게 된다. 원청은 비용을 줄이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한다. 입찰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 일감을 따낸 하청업체는 안전관리에 돈을 쓰지 않는다. ‘고용 사슬’의 끝단에 있던 아들은 꿈과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위태로운 노동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끝을 봐야 할 ‘산재와의 전쟁’ ― 니체적 시선

산업재해는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비극이다.

현장에서 사람이 추락하고, 기계에 끼이고, 화마에 휩싸인다.

죽음을 ‘예외’가 아닌 ‘구조’로 만들어버린 체제는, 결국 이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드러낸다.

 

니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단순히 안전 불감증이나 관리 소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보다 효율을 우위에 두는 가치 체계’, 곧 “힘을 약화시키는 가치의 지배”다.

 

니체는 인간을 ‘생명의 상승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로 이해했다.

그러나 산재 현장은 그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동자의 몸은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취급되고, 죽음조차 비용 계산의 항목으로 환원된다.

 

이는 삶을 긍정하는 태도가 아니라,

‘가치 없는 존재는 버려도 된다’는 허무주의적 계산에 다름 아니다.

 

니체가 경멸한 ‘노예 도덕’은 바로 이런 곳에서 작동한다.

강자의 권력은 생산성과 자본으로 치장하고, 약자의 고통은 침묵 속에 묻힌다.

그렇다면 ‘산재와의 전쟁’은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선다.

 

니체가 말한 ‘가치의 전도(Umwertung der Werte)’가 필요하다.

인간의 몸과 노동을 기계의 효율보다 상위에 두는 전복,

고통받는 자의 삶을 단순한 피해 통계가 아닌 ‘존엄의 목소리’로 듣는 전환이 그것이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죽음을 직시하고도 삶을 긍정할 수 있는가”라는 니체의 물음에 응답하게 된다.

산재의 끝은, 단순히 사고가 사라지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인간의 노동과 죽음을 어떻게 기념하고, 어떻게 의미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니체가 말했듯, “삶은 죽음과 함께 춤추는 축제”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산재는 죽음을 축제로 만들지 못하고, 오히려 삶을 갉아먹는 허무로 전락시킨다.

산재와의 전쟁이 끝나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단순한 안전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삶을 긍정하는 힘’을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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