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판/ 7월 9일 한겨레 그림판권범철기자수정 2025-07-09 16:12등록 2025-07-08 19:45

“인류의 희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먼저 그것이 막연한 낙관주의를 뜻하는지, 아니면 고통과 모순을 통과해 나온 결실을 뜻하는지부터 구분하고 싶습니다.
만약 인류의 희망을 모두가 평화롭게 살고 서로를 이해하는 세상이라고 정의한다면,
저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단순히 믿는’ 것보다는, 그것이 가능해지도록 끝없이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은 자연 상태에서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각 개인이 스스로의 욕망과 두려움을 성찰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재구성하며,
작은 선택들을 통해 매일같이 길어 올려야 하는 노동이자 창조물입니다.
니체의 시선에서 본다면, 인류의 희망은 ‘어디선가 주어지는 구원’이 아니라
스스로를 넘어서는 의지에서 탄생합니다.
그는 우리가 현재의 가치, 제도, 도덕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을 부수고 새로 세우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더 고양된 인간의 모습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희망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매 순간 자신과 세계를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행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그러니 인류의 희망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네,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동적 믿음이 아니라 능동적 창조를 전제로 한 믿음입니다”라고 답하겠습니다.
희망은 주어지는 약속이 아니라, 우리가 매 순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불씨입니다.
니체의 말처럼, 우리는 ‘현재의 인간을 뛰어넘는’ 의지를 통해서만 더 고양된 세계를 열 수 있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어떤 것이다.”
(Der Mensch ist Etwas, das überwunden werden soll.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직시하면서도 삶을 긍정하는 힘, 그 힘이야말로 인류의 희망을 지속시키는 토대다.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고 새로운 창조의 기점으로 볼 때,
희망은 단순한 미래의 꿈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만들어 가는 현실이 된다.
한계 넘어서
무너짐 속에 피는
희망의 불씨
돌 속 새싹은
부서짐을 먹고서
하늘로 뻗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