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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법 국회 통과, ‘공영방송 정상화’로 나아가길

담빛 2025. 8. 6. 08:11

한겨레 사설.칼럼사설[사설] 수정 2025-08-05 18:33등록 2025-08-05 18:06기사를 읽어드립니다.

 

 

5일 국회에서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공영방송 정상화’와 니체적 질문: 무엇이 정상인가를 묻는 힘

최근 국회를 통과한 방송법 개정안은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지향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정상화’는 과연 누구의 관점에서,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가?

니체라면 이 물음 앞에서 곧장 “그 ‘정상’이란 말, 누가 정했는가?”라고 되묻고,

그 안에 숨어 있는 도덕적 판단과 권력 의지를 파헤쳤을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이 세계는 고정된 본질이나 불변의 질서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힘의 관계와 가치의 해석으로 움직이는 장이다.

그렇기에 ‘정상화’란 이름으로 어떤 질서를 복원하거나 고착시키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이미 특정한 권력 의지의 발현이며, 해석의 투쟁이다.

‘정상화’는 중립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기존의 힘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새로운 권력을 정당화하려는 이름 없는 의지의 언어일 수 있다.

 

공영방송이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은, 마치 이전에 어떤 본래적 상태,

순수하고 중립적인 이상적 모델이 존재했음을 전제한다. 그

러나 니체는 바로 그런 ‘기원’이나 ‘본질’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이 만든 허구적인 발명품이라 지적한다.

그는 진리를 ‘오래도록 반복되어 망각된 은유’라고 말했다.

즉, 지금 우리가 말하는 ‘정상’이란 것도 단지 반복과 권력의 구조 속에서 굳어진 해석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향하는 모든 시도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질서’의 창출이며, ‘진리’의 재편이다.

그것이 비록 과거의 어떤 이상을 모방하려는 듯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새로운 힘이 등장하여 기존의 해석을 밀어내고 자신의 해석을 ‘정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니체는 이러한 가치의 전복과 창조의 순간을 ‘위버멘쉬(Übermensch)’의 출현으로 이해했다.

그는 기존의 도덕을 넘어서는 자,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는 자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가능성이라 보았다.

따라서 방송의 ‘정상화’가 진정 공영의 가치를 지향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현재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기준과 해석을 창조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즉, 단순한 복원으로서의 정상화가 아니라, 창조적 파괴를 동반한 새로운 가치의 탄생이어야 한다.

 

정상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성은 언제나 투쟁이며 해석의 경쟁이다.

그러므로 ‘공영방송 정상화’는 하나의 가치 지향이 아니라, 다수의 해석이 충돌하고 윤리적 책임이 요청되는 실천의 장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가치를 창조하는 자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공영방송의 ‘정상화’가 이 구원의 가능성을 열 수 있으려면, 그 안에 깃든 권력의 의지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더 나은 해석과 더 강한 책임의 형식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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