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5.09.15 20:48 수정 2025.09.15 20:51

<기사 일부::
1990년대 학생운동은 스스로를 ‘막차 탄 세대’라 불렀다. 하지만 30년이 지나도 ‘막차’는 끊기지 않았다. 비주류일지라도 학생운동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대학생 대신 다른 이름을 지닌 다양한 운동이 성장해왔다. 겨울의 광장을 가득 메운 깃발과 응원봉은 그 결과다.
그렇다면 ‘막차’라는 은유야말로 민주화 시기의 학생운동을 과도하게 신화화한 것 아닐까. ‘막차 탄 세대’는 오히려 민주화 이후 새로운 시대의 ‘첫차’를 탔던 것 아닐까. 그 누구도 자기 시대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들 자신의 시대를 살고, 시대와 대결하는 것을 통해 배운다. 그런 의미에서 막차는 시대에 둔감해져 그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첫차는 다른 누군가의 막차가 된다.
화담사유:;
진정한 **'막차'**란 없다.
막차라는 생각은 한 시대의 위대하고 영웅적인 절정을 놓쳤다고 믿는
이들의 자기비하적인 한탄일 뿐이다.
과거를 낭만적으로 미화하고
현재를 보잘것없는 모방이라 단정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진짜 막차는 이전 세대의 영광에 매달리며
역사의 치맛자락을 잡고
자신만의 시대를 창조하려 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새로운 시작은 마지막 행위가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과정이다.
진정한 용기는 새로운 시대의 **'첫차'**에 올라타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는 도전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
'막차 세대'는 자신들이 마지막 열차를 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히 새로운 것의 첫 시작을 탄 것임을 보지 못했다.
그들의 자기연민은 잃어버린 시대의 반영이 아니라,
앞에 놓인 미지의 영역에 맞서기 싫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 인간의 시대는
'마지막' 또는 '최종'의 환상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용기에 의해 정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