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미래와 과거의 싸움’이다 고명섭의 카이로스
- 수정 2025-09-02 19:34
- 등록 2025-09-02 19:23

<기사 일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1882년 1월 첫날 자신이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새해 결심을 밝히는 글을 쓴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이것이 지금부터 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 니체는 새해 첫날의 그 글에서 ‘필연적인 것을 아름답게 보는 것, 그리하여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피해 갈 수 없는 것, 겪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면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여 아름다운 것으로 느끼는 것이 운명을 사랑하는 법이라는 얘기다.
이 운명애를 이야기하기 다섯달 전에 니체는 알프스 고산 마을 실스마리아에서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라는 일생일대의 체험을 했다. 마치 모래시계가 거꾸로 세워져 다시 떨어지듯이 이 우주 전체의 삶이 한 알의 빠짐도 없이 그대로 되풀이된다는 생각이 계시처럼 들이닥쳤다. 그런 영원회귀 속에서 니체 자신의 삶도 한 치의 오차 없이 무한한 시간에 걸쳐 영원히 되풀이되리라는 영감이었다.
“너는 현재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다시 한번, 나아가 수없이 몇번이고 되살아야 한다. 거기에는 어느 것 하나 새로운 것이 없을 것이다. 일체의 고통과 기쁨, 일체의 사념과 탄식, 네 삶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이 되풀이돼야 한다. 존재의 영원한 모래시계는 언제까지나 다시 회전하며, 작은 모래알에 불과한 너 자신도 똑같이 회전할 것이다.”
니체는 영원회귀 계시 앞에서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똑같이 되풀이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니체는 스스로 이렇게 답했다. ‘영원한 반복이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긍정과 의욕의 대상이 되려면, 내가 사는 이 삶을 가장 창조적인 삶으로 가꾸어야 한다. 이제껏 살아온 삶의 오류를 극복해 더 좋은 삶, 더 창조적인 삶으로 만들 때 삶은 긍정과 의욕의 대상이 된다.’ 니체는 영원회귀 체험을 운명애의 명령으로 바꾸었다.
에드워드 핼릿 카는 역사를 두고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지만, 더 찬찬히 생각하면 역사는 ‘과거와 미래의 대화’다. 역사란 ‘미래를 앞에 두고 과거를 읽음으로써 현재를 여는 일’이다. 어떤 미래를 불러올 것인가 하는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과거를 바르게 읽을 수 없고 현재를 제대로 밝힐 수 없다.
20세기 사상가 함석헌은 일제강점기 한복판에서 눈물을 쏟아가며 통한의 한국 역사를 쓰다 말고 탄식했다. “있는 것은 압박이요 부끄러움이요 찢어지고 갈라짐이요, 잃고 떨어짐의 역사뿐이다. 그것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슬픔이다. 세계의 각 민족이 다 하나님 앞에 가져갈 선물이 있는데 우리는 있는 게 가난과 고난밖에 없구나, 할 때 천지가 아득하였다. 이집트와 바빌론은 문명의 시작이라는 명예를 가졌고, 중국은 도덕을, 그리스는 그 예술을, 로마는 그 정치를 가지고 가겠지만 한국은 무엇을 가지고 갈 터인가?” 그 통탄 속에서 떠오른 것이 ‘고난의 역사’였다. 슬픔과 비참뿐인 고난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다. 우리가 가져갈 것은 고난밖에 없다. 그러나 함석헌이 고난을 이야기한 것은 고난에 주저앉자는 것이 아니었다. 고난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지 체념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돌아보면 인류의 역사가 고난의 역사 아닌 것이 없다. 한반도 민중은 그 고난을 더 지독하게 더 처절하게 겪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고난을 극복하는 것은 ‘역사의 뜻’을 드러내는 길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함석헌은 쓴다. “세계 역사 전체가, 인류가 가는 길 그 근본이 본래 고난”이기에 우리의 고난은 가시 면류관을 쓴 고난이고, 그 고난을 극복하는 것은 세계사가 우리에게 준 사명이다. “고난은 인생을 깊게 만든다. 고난은 인생을 위대하게 만든다. 개인에게서나 민족에게서나 위대한 성격은 고난의 선물이다.” 함석헌이 말하는 ‘위대한 성격’을 다른 말로 하면 ‘위대한 정신’이 될 것이다. 고난이 위대한 정신을 만든다.>
화담사유:;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끊임없이 부딪히는 장이다.
과거는 전통과 기억, 권력의 정당화를 통해 현재를 붙들어 두려 하고,
미래는 새로운 가능성과 해방의 열망을 통해 현재를 흔들어 놓는다.
따라서 역사는 언제나 정지하지 않고,
미래와 과거가 서로 충돌하며 현재를 다시 쓰는 과정으로 드러난다.
이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과거는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현재를 억압하는 무게로 작용할 수 있다.
미래는 그런 과거를 전복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젖힌다.
그러므로 역사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미래가 과거를 넘어설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하고 현실로 끌어오는 행위다.
결국 카이로스는 바로 그 순간,
즉 미래가 과거의 권위를 뚫고 현재를 변혁하는 결정적 시간이다.
역사는 그런 시간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시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