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과 동갑이라는 당신께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 수정 2025-09-11 19:38
- 등록 2025-09-11 19:14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돼 풀려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지난달 15일 자정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기사 일부:: 이우연 ‘한겨레’ 기자님 안녕하세요? 저는 박권일이라고 합니다. 지난달 기자님께서 쓰신 칼럼 ‘조국 사태와 염치없는 어른들’을 몇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부끄럽고 참담했습니다. 그래서 일면식도 없는 기자님의 글을 핑계 삼아 이렇게 글을 씁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특별 사면을 다룬 ‘한겨레’ 내부 칼럼은 모두 세개인데요. 그중 두개(이춘재 논설위원, 박찬수 대기자)가 조국 사면을 옹호하는 논지입니다. 이우연 기자 칼럼만이 명확한 비판적 논조였지요. 그러나 시민들 생각은 ‘한겨레’보다 훨씬 비판적이었습니다. 사면 직후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폭락했고, 가장 큰 이유로 조국 사면이 꼽혔습니다.(중략)
기자님은 이렇게 쓰셨어요.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1990년대생 기자들이 어느 민주당 의원과의 자리에서 청년들의 공분을 말하자, 그는 “공부 잘하는 애들이나 그렇지 학벌 안 좋은 애들은 박탈감도 못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기자님은 자신의 분노가 능력주의라는 협소한 시각이 아닐까 검열하게 되어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하셨지요.
이우연 기자님,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잘못한 자들은, 글에 쓰셨듯 “분노를 품는 것마저 죄책감 들게 하는 기성세대”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분노는 지극히 타당합니다. “화조차 못 내고 체념했던 청년들을 위하는 척 말하지 말라.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청년들이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세계를 원치 않게 봐버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중략) 기자님, 그들을 비판하는 우리도 훗날 그들처럼 변할지 모릅니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을 때,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에 서랍을 뒤져보곤 하잖아요. 그때 각자의 서랍에서 부끄러움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부디 그들처럼 추하게 늙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자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화담사유:;
조국혁신당의 성비위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 사건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성세대 정치’의 민낯을 드러냈다.
언론의 비판 기사들은 이를 날카롭게 지적했지만,
여전히 일부에서는 “당을 지키기 위해 감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 있다.
잘못을 저지른 것은 분명히 권력을 가진 기성세대다.
그런데도 이들을 옹호하는 태도는,
오히려 청년들에게 분노할 권리마저 빼앗아 버린다는 것이다.
“너희가 분노하는 건 미숙하다” “너희는 아직 모른다”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청년의 목소리를 죄책감으로 덮어버리는 것.
하지만 청년들은 이미 보고 말았다.
기성세대가 어떻게 스스로의 권력을 지키려다 도덕적 기준을 무너뜨렸는지를,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며 체제를 유지하려는 모습을.
비판 기사는 바로 그 장면을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중요한 것은 청년들이 이 현실을 목격했다는 사실 자체이지,
그 감정을 억누르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결국 이번 사건은 단순한 성비위 문제를 넘어선다.
기성세대가 추락하는 장면을 청년들이 목도했다는 것,
그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따라서 기성세대의 어떠한 행위도
더 이상 “청년을 위한다”는 말로 포장해서는 안된다.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은 감싸기나 변명이 아니라,
책임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다.
이들도 한 때는 청렴한 청년이었던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