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섬·기후’ 작은 영화제의 탄생 [김탁환 칼럼]
- 수정 2025-08-19 19:30
- 등록 2025-08-19 18:50


<기사 일부:: 김탁환 | 소설가
목백일홍이 만개하면 새벽에 하는 일이 하나 더 는다. 논으로 나가 고함을 질러 참새 떼를 쫓는 것이다. 농사 스승인 이동현 농부과학자가 올해도 벼를 24개 품종이나 심은 탓에, 참새들은 뷔페 오듯 우리 논을 찾는다. 작년까진 적진주찰에 가장 많이 달려들더니 올해는 족제비찰이 인기다. 서둘러 품종 연구용 논 전체에 망을 씌우고 길을 나섰다. 볕이 따가운 늦여름에 열리는 영화제들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니체적 사유:: 작은 영화제와 삶의 긍정
니체가 이 장면을 본다면, 그는 무엇보다 **‘작음의 힘’**을 강조할 것이다.
목백일홍이 만개하는 순간, 새벽에 참새 떼를 쫓는 일은 소소하고 반복되는 노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니체는 바로 그 반복 속에서 영원회귀의 긍정을 읽어낸다.
“네가 매일같이 다시 살아도 좋은가?”라는 질문 앞에서,
농부의 새벽 고함은 ‘예’라고 답하는 몸짓이다.
작은 영화제 또한 그러하다.
대규모 산업영화제와 달리, 마을·섬·기후라는 주제로 열린 작은 축제는
거대 서사의 영광이 아니라, 구체적 삶의 결을 기리는 자리다.
니체가 보기에 이런 축제는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가 약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차원에서 발휘된 것이다.
거대한 도시의 레드카펫 대신, 뙤약볕과 바람,
작은 마을의 광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인간이 다시 자연과 연결되는 방식이다.
니체는 예술을 “삶을 정당화하는 위대한 힘”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기후와 섬, 마을을 주제로 하는 작은 영화제는 삶을 더 깊이 긍정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그것은 화려한 영화 산업의 시장 논리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경외, 공동체의 호흡, 자연과 더불어 있음을 예술로 재현하는 실천이다.
결국, 참새를 쫓으며 농부가 벼를 지켜내는 일과 작은 영화제가
마을의 삶을 붙들어내는 일은 같은 결이다.
니체의 언어로 말하자면,
이는 “쇠퇴하지 않고, 오히려 삶을 두 배로 긍정하는 힘의 표지”다.
작은 영화제의 탄생은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니라,
마치 여름 볕 속 벼이삭을 지키는 농부의 외침처럼, 삶을 끊임없이 긍정하려는 인간의 몸짓으로 읽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