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내년 선거 때 심판받겠다…사면 반대 국민께 효능 입증할 것”
인터뷰 | 조국 전 혁신당 대표
사면 반대 48%에 저의 효능·역할 입증할 것
11월 혁신당 전대 열리면 당 대표 출마할 생각
민주당과 합당은 내년 초 열린 자세로 논의
윤석열·한동훈, 지위 보전 위해 칼 망나니처럼 휘둘러

권력과 ‘심판’의 언어
니체는 기독교적 도덕 전통이 인간을 끊임없이 ‘심판’의 구조 속에 가두어 왔다고 보았습니다.
죄와 벌, 상과 벌의 언어는 힘의 역동이 아니라, 힘을 억압하고 죄책감을 내면화시키는 도구였습니다.
정치인에게서 “심판받겠다”라는 발언은 일견 책임 의식처럼 들리지만,
니체적 시각에서 보면 이는 여전히 ‘죄-벌의 도덕 체계’를 전제하는 언어입니다.
즉, 자신의 정치적 행위가 창조적 권력의 발현이라기보다는,
대중의 심판대 위에 서는 피고의 위치를 자임하는 셈이지요.
의지의 문제 ― 능동인가, 수동인가
니체는 인간을 능동적 주체와 수동적 반응자로 나누어 사유했습니다.
“심판받겠다”라는 태도는 자기 의지를 밀고 나가는 능동적 창조자의 말이라기보다,
타자의 시선을 전제로 한 수동적 태도로 읽힐 수 있습니다.
힘에의 의지가 살아 있다면,
그는 “나는 내 길을 간다. 그 길에서 증명하겠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받겠다’라는 표현은 이미 타자의 도덕과 평가를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의 힘을 약화시키는 어휘이지요.
운명애(Amor Fati)와 정치적 태도
니체가 강조한 것은 운명을 사랑하는 태도였습니다.
진정한 정치적 주체라면, 대중의 평가가 어떠하든 그것을 하나의 필연으로 껴안고 자신의 길을 긍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심판’이라는 수동적 언어에 머무른다면,
그는 자신의 행위를 자기 긍정의 지평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선거나 권력의 자리에서 진정한 힘의 철학은
“나는 심판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의 삶과 정치가 곧 심판이다”
라는 말에 가깝습니다.
니체적 재구성
따라서 니체적 시선에서 이 발언은
도덕적 죄책감의 언어가 정치적 책임의 언어로 포장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대중에게 자신을 던져 놓음으로써
‘정치적 연극’을 완성하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니체적 질문은 이렇습니다:
- 그는 정말 자신의 길을 창조하고 있는가, 아니면 대중의 도덕적 심판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는가?
- 이 언어가 힘을 생성하는가, 아니면 힘을 소진시키는가?
결론적으로,
니체적 시선에서 “내년 선거 때 심판받겠다”라는 발언은
책임감의 표명이라기보다
**‘도덕적 심판 구조에 여전히 갇혀 있는 정치적 언어’**입니다.
니체라면 이 언어를 넘어서는, 자기 긍정과 운명애의 태도를 요청했을 것입니다.